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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가 벨라스케스를 모방한 숨겨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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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회화를 얘기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20세기 최고의 미술가, 피카소! 1881년 스페인에서 태어난 파블로 피카소는 프랑스 미술과 르누아르, 뭉크, 고갱, 고흐 등 선배 미술가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초기 프랑스 파리의 비참한 생활을 주로 그려 내었던 청색시대를 거쳐 입체파의 거장이 되었으며, '게르니카', '아비뇽의 처녀들' 등 불후의 명작들을 남겼습니다. 이러한 피카소가 남의 작품을 모방하는 것을 즐겼다는 사실은 대부분이 모르실 겁니다. 이번 글에서는 피카소의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부분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피카소의 모방 화가 지망생이었던 소년 피카소는 어느 날 마드리드의 한 미술관에 걸린 거대한 그림을 한참 동안 서서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 그림은 바로 벨라스케스의 작품인 '시녀들'이었습니다. 이때부터 피카소는 매일 미술관으로 가서 이 그림을 따라 그렸습니다. 본인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수없이 그리고 다시 또 그렸습니다. 피카소는 심지어 이미 입체파의 거장이 된 후에도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따라 그렸습니다. '시녀들' 전체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그림의 일부를 독립적인 작품으로 그리기도 하였습니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은 다른 미술가들에게도 예술적 영감을 주었지만 피카소만큼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때에는 본인의 고유한 스타일로 변형하여 그렸습니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바르셀로나의 피카소 박물관에 가면 이렇게 벨라스케스의 작품 '시녀들'을 모방하여 자기만의 스타일로 그린 '피카소의 시녀들'이 수십 점이나 전시되어 있습니다. 80세가 넘어서도 마네, 쿠르베, 엘 그레코 같은 다른 거장들의 작품도 따라 그리고 오마주하기도 하였습니다. 피카소가 모방하게 된 계기 미술교사였던 아버지는 미술 신동 피카소를 바르셀로나에 있는 미술학교에 보냈습니다. 그러나 학업에 잘 적응하지 못하여 다시 마드리드의 왕립 미...

신동 이이, 9번 장원급제와 임진왜란 전 10만 양병설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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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에서는 본인의 천재성을 나라를 위해 고스란히 사용한 율곡 이이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이의 천재성 어려서부터 신동 소리를 들었던 이이는 어머니 신사임당의 가르침과 독학으로 13세의 어린 나이에 진사시에 장원급제를 합니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시험을 봐서 총 9번의 장원을 하게 되는데, 쉽게 설명하면 사시, 외시, 행시 등의 고등 고시 시험을 모두 수석으로 합격한 것이 됩니다. 서인, 동인 간의 당파 싸움이 극에 달했던 당시에는 이 사실이 이이를 비난하는 단골 표적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미 합격한 후에 보지 않아도 되는 시험까지 굳이 응시해서 다른 사람의 기회까지 빼앗는 과도한 집착이라는 지적을 받았던 것입니다. 율곡 이이의 초상화 또한 우리가 과거 학교에서 배웠던 내용인 임진왜란 발생 전 이이가 주장했다는 10만 양병설 또한 역사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그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이 많습니다. 이이가 항상 국방을 중요시하였고, 학문과 천재성을 바탕으로 한 예견력이 뛰어났으므로 당시 국제 정세를 조금만 파악하였다면 충분히 10만 양병성을 주장할 만하였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당시 조선의 경제나 인구 구성으로는 10만 병사를 만들기 자체가 불가능하였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 또한 당쟁의 결과로 왜곡되었다는 주장이 가장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개인적으로는 10만이라는 숫자만 부정확할 뿐, 당시의 한반도 상황을 보면 조선의 군사력 강화 필요성에 대한 주장은 분명히 있었을 것이라는 의견입니다. 20대 청년 이이가 직접 찾아가서 만났던 퇴계 이황도 이이의 천재성과 나라를 위하는 진정한 선비 정신을 가지고 있음을 단번에 파악하고,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물론 수많은 책 이외에 너무도 검소하게 사는 진정한 선배 선비였던 이황에 대한 이이의 존경과 찬사도 당연히 차고 넘쳤습니다. 이이의 희망 당시의 조선은 뇌물이 아니면 관직에 오르지 못하고, 소송의 판결도 뇌물에 의해 결정되며, 하급 관리들은 백성들을 핍박하여...

퀸, 갈등 속 탄생한 보헤미안 랩소디의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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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에서는 이미 충분히 실력 있고 유명한 그룹이었지만 보헤미안 랩소디라는 영화로 세대를 초월한 레전드 그룹으로 재조명되었던 그룹 퀸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룹 퀸 퀸은 한창 열정적으로 활동하던 전성기 시절에도 큰 인기는 얻었지만 항상 음악 평론가들에게 혹평을 받았던 그룹이었습니다. 하드락, 포크, 오페라, 디스코 등 매우 다양한 장르의 음악 활동을 하다 보니 그룹의 정체성을 알 수 없는 잡탕과 같은 음악을 한다는 것이 당시 음악 평론가들이 비판적이었던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획일적이지 않고 특정 음악 범주에도 국한되지 않는 음악적 다양성이 오히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그룹 퀸의 가장 큰 강점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1970년 영국 대학생 4명으로 결성된 퀸은 공교롭게도 오페라와 중창을 좋아했던 프레디 머큐리, 빠른 록음악과 발라드를 좋아하고 작곡했던 브라이언 메이, 정통 하드록을 좋아했던 로저 테일러... 모두 전혀 다른 성격과 자기만의 음악 스타일을 추구하는 개성 강한 멤버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전설적인 그룹 퀸 심지어 대학생이었던 이들의 전공도 모두 다르고 특이했는데, 미술대학 디자인 계열 전공의 프레디 머큐리, 치과대학을 다녔던 로저 테일러, 그리고 천체물리학 박사과정을 밟던 브라이언 메이 등 모두 다양한 학과의 고학력자들이었습니다. 창의성의 원동력, 갈등 이러한 극명한 차이 때문에 멤버들 간의 의견 차이가 빈번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었고, 음악 작업을 하면서 무수히 다투고 싸웠습니다. 단순한 말다툼을 떠나서 가구를 집어던지는 격렬한 싸움을 벌이기도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수시로 매스컴에 불화설이 보도되었으며, 심지어 1980년대 초에는 퀸 멤버들이 각자 솔로 앨범을 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룹 밴드 활동을 함께 하면서 별도로 솔로 앨범을 내는 것은 당시에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반복적인 갈등은 그룹 퀸 멤버들의 독특한 개성과 천재성 때문이었는데, 재미있는 점은 각자 냈던 솔로 앨범들이 대부분 성공하지 못했다는 ...

집단지성의 의미와 활용, 그리고 숨겨진 위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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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은 1910년대 하버드 대학교의 교수이면서 곤충학자였던 윌리엄 모턴 휠러(William Morton Wheeler)가 개미의 사회적 행동을 관찰하면서 처음 제시한 개념입니다. 개체 하나로는 미미한 개미지만 공동체로서 군집하여 협업을 하게 되면 훨씬 높은 지능 체계를 형성한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이후에도 많은 학자들의 집단지성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는데, 제임스 서로위키(James Surowiecki)는 자신이 수행한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특정 조건에서 집단은 집단 내부의 가장 우수한 개체보다 지능적이다."라고 주장하였으며, 사회학자 피에르 레비(Pierre Levy)가 사이버 공간에서의 집단지성 개념을 정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집단지성의 활용 집단지성이란 다수의 개체들이 상호 협력하거나 경쟁을 통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게 하는 지적 능력을 말합니다. 즉, 소수의 뛰어난 전문가의 의견보다는 다수의 지식을 모아 선별, 검토하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개념으로, 인터넷 백과사전 웹사이트인 위키피디아, 나무 위키 등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현재 크게 발전한 SNS나 온라인 포럼과 같은 소셜 미디어의 경우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지만, 홍수처럼 밀려드는 다양한 정보로부터 의미 있고 가치 있는 내용을 도출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집단지성으로 트위터 여론을 분석해 상영 예정 영화의 흥행을 예측하고, 회사 내부 구성원들의 다양한 개선 의견을 수렴하기도 합니다. 또한 기업의 신제품 개발이나 정부의 신규 프로젝트에 대한 아이디어를 모으는데도 집단지성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집단지성의 의미는 단순히 많은 의견들의 취합이 아니라, 다수가 상호작용하면서 창출되는 새로운 통찰력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방대하게 수집된 데이터에 컴퓨터 로직을 활용하여 필요로 하는 집단지성을 압축하고 도출하는 방식인 애널리틱스 방법도 많은 선진 기업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집단지성 집단지성의...

디드로 효과: 한 벌의 가운이 지갑을 열게 만드는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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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에서는 한 철학자의 일상에서 유래되어 수많은 기업의 마케팅 전략으로 활용되어 오고 있는 디드로 효과(Diderot Effect)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디드로 효과의 유래 18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드니 디드로(Denis Diderot)가 에세이 '나의 오래된 가운을 버림으로 인한 후회' 중 한 일화에서 유래된 효과로, 하나의 물건을 사고 난 후 그에 어울리는 물건들의 추가 구입으로 이어지는 소비 현상을 말합니다. 드니 디드로는 어느 날 친한 친구로부터 멋있는 붉은 가운을 선물로 받은 뒤 서재에 걸어놓았는데, 주변의 가구들이 멋진 가운과 비교되니 너무 초라해 보였습니다. 그는 붉은 가운과 어울리는 의자, 책상을 새로 구입하여 바꾸기 시작하였고, 결국 서재 안의 모든 가구들을 새것들로 교체하게 되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지출해버린 부담스러운 총비용과 함께, 선물로 받은 붉은 가운에 의해 한동안 지배를 당한 것에 대한 후회가 그 글의 내용입니다. 이후 수많은 제조회사와 제품들의 마케팅과 판촉 전략으로 사용되어 왔는데,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었지만 과소비 조장과 불필요한 추가 생산으로 인한 환경오염에 대한 비판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디드로 효과는 자동차, 패션 상품, 가전제품 등 주로 고가이면서도 시각적 디자인의 가치가 중요한 프리미엄 제품들에서 상대적으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텔레비전, 냉장고, 에어컨, 세탁기, 청소기 등 가정의 필수 가전제품들을 특정 제조사의 제품이나 특정 브랜드의 제품으로 통일하여 구매하도록 유도하거나 촉진하기도 합니다. 오토바이 제조사는 오토바이의 심벌마크인 엠블럼이 새겨진 액세서리나 가죽 재킷을 고가로 판매하지만, 충성스러운 마니아들은 개의치 않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구매합니다. 바로 디드로 효과입니다. 고가의 명품 가방을 구입한 고객이 열쇠고리나 손지갑, 심지어 옷이나 향수까지도 연계하여 동일 디자이너나 제조사 제품을 구입하도록 하는 것도 디드로 효과입니다. 또한, 인기를 끈 영화나 드라마, 만화...

엔론 분식회계 잡아낸 벤포드 법칙, 숫자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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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에서는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한때 미국의 7대 기업에 속했던 천연가스 에너지 업체 엔론의 분식회계를 찾아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서 널리 알려진 법칙인 벤포드 법칙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벤포드 법칙 물리학자 프랭크 벤포드(1883년 ~ 1948년)는 미국 도시들의 인구 기록표, 강 335개의 넓이, 물리학 상수 104가지, 분자 중량 1800개, 5000개의 수학책 등 총 20개 분야의 숫자들 중에서 무작위로 숫자를 뽑아 분석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수들의 첫 번째 자리 숫자는 1에서 9까지의 숫자들이 약 11%의 동일한 비율로 나타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숫자가 낮을수록 첫 번째 자리에 나올 확률이 높아진다는 특별한 규칙을 발견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벤포드 법칙입니다. 1로 시작하는 숫자는 전체의 30.1%로 가장 높았고, 2로 시작하는 숫자는 17.6%, 3은 12.5%, 4는 9.7%, 5는 7.9%, 6은 6.7%, 7은 5.8%, 8은 5.1%, 9는 4.6%로 가장 낮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자료의 숫자들은 일정한 비율로, 즉 선형적으로 증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벤포드 법칙을 좀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 일정한 속도로 자라는 나무를 가정하고 초기 높이를 1이라고 하면, 높이가 2로, 즉 2배가 자랄 때까지 걸리는 시간보다 높이가 2에서 3으로, 1.5배로 자랄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게 됩니다. 3에서 4로 1.33배 자라는 데 걸리는 시간은 더 짧아지고, 이와 같이 나무는 높이가 낮은 상태에서 머무는 시간이 가장 길고 높아질수록 머무는 시간이 점점 더 짧아지게 됩니다. 이것을 상용로그 식으로 정리한 것이 벤포드 법칙입니다. 그 뒤로도 수많은 학자들이 사회, 경제 모든 분야의 숫자들에 대해서 분석하였고 벤포드 법칙을 따른다는 것을 증명하였습니다. 가장 특이할 만한 사건은 미국의 대표적인 에너지 회사였던 엔론의 회계부정 사실도 바로 이 벤포드 법칙에 의해 발견되었다는 사실인데, 인위적으로 회계...

군대 유머 모음: 사인 거부와 교인 늘이는 방법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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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유머가 썰렁하다고요? 큰 웃음을 선사하는 군대 유머들을 공유합니다. 그냥 시원하게 주욱 읽고 한 번 웃고 가세요! 사인 거부 이유 실제 전장에 투입되어 일했던 어떤 간호 장교가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주장하는 이야기입니다. 아무런 사건 사고나 문제없이 조용한 나날이 이어지던 어느 날, 의식은 있으나 중상을 입은 사병 한 명이 실려왔습니다. 간호 장교는 정말 오랜만의 수술 준비를 지시하고 확인한 후, 환자에게 수술 승낙서를 받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그 사병은 매우 불안하고 걱정되는 표정으로 그 서류에 사인하기를 망설이는 것이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수술을 두려워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니, 간호 장교는 중상이긴 하나 수술 관점에서는 비교적 쉬운 수술이고 군의관도 명망 있고 실력 있는 의사 출신이니 걱정하지 말고 사인을 하라고 종용하였습니다. 그래도 사병이 펜을 든 손을 떨며 사인을 망설이자, 간호 장교는 화가 나서 큰 소리로 호통을 치며 사인을 강요하였고, 결국 사병은 어쩔 수 없이 체념한 듯 사인을 하였습니다. 잠시 후 사병이 수술실로 들어가고, 간호 장교는 사인을 받았던 수술 승낙서를 정리하려고 집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수술 승낙서가 아니었고, '시체 부검 의뢰서'였습니다. 조용하던 병원에 갑작스러운 수술이 잡히면서 간호 장교는 서류가 잘못 바뀐 것을 모르고 사병에게 사인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유머 모음 교인 늘이는 방법 한 대대장이 절실한 크리스천인 사령관으로부터 이번 일요일 교회 예배에는 이전보다 많은 사병들이 참석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라는 비밀 명령을 받았습니다.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면 안 되니 절대 강요나 명령을 해서는 안 되니, 아이디어를 내어 실행하라는 어려운 주문이었습니다. 대대장은 참모와 함께 한참을 고민하다가 하사관들을 불러 전 사병들이 볼 수 있도록 공고를 붙이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그 주 일요일 예배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사병들이 참석하였고, 발 디딜 틈 하나 없이 꽉 찬 상태에서 ...